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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in Honeymoon

보이지 않는 따사로운 손길




보이지 않는 따사로운 손길

글쓴이: 향기™


  2011년 7월 22일, 금요일.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떴다. 지난번 여행에 들르지 못했던 코모* 호수를 보러 가는 날이다. 사진으로 본 호수 주변 멋진 풍경을 떠올리며, 숙소에서 가까운 두오모 광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밀라노 중앙역을 향해가는 마음이 즐겁다. 지하철을 내려 중앙역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언뜻 사과 방송을 들었다. 하지만 들뜬 마음에 대수롭잖게 여기며 역 매표소로 향한다. 그리 이른 시간이 아닌데 아직 창구가 닫혀 있다. 그러고 보니 역 내 분위기가 심상찮다. 사람들 표정이 당황스럽다. 무슨 일일까.

  마침 창구 앞에 서 있던 우리나라 청년이 상황을 설명해준다. 파업이다. 전광판에 떠있는 수많은 열차 시각이 운행 취소로 바뀌어 간다. 청년의 설명에 의하면 타려던 열차가 출발 수 분전에 취소됐고 다음 열차가 운행되는지를 기다리고 있다 한다. 예약했던 승차권은 취소하고 다음 열차표를 끊었는데 다음 열차도 운행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초조해한다.

  정해진 일정에 의해 움직이는 휴가 여행객에게 돌발 상황만큼 피하고 싶은 게 없다. 우린 어떤가. 내일 여정과 바꾸면 되지만 문제는 이미 예약해 둔 열차표 때문에 그 시간을 기다려 취소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또 하나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유레일 패스를 개시해야 하는데 창구에 역무원이 없으니 그럴 수 없다. 유레일 패스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유럽에서 열차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유럽 외 지역에 거주하는 여행객을 위한 프리미엄 티켓이다. 이 패스를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개시 날짜에 맞춰 역무원에게 확인 스탬프를 받아야 한다. 역무원은 직접 여권번호, 유효기간 등을 패스에 적어주고 개시일자 도장을 찍어 준다. 이를 받지 못하면 열차가 취소되지 않고 정상 운행한다 해도 불법 승차가 되어 운임과 과태료를 몽땅 물어야 할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방법을 찾기 위해 역내를 서성이다 한 역무원을 만났으나, 오로지 "Closed"만을 말한다. 코모엔 가지 못해도 내일 또 발품을 팔 수 없으니 패스 개시만이라도 해놓아야 할텐데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한참 후 다른 역무원을 찾아 사정을 얘기하니 역 내 한켠으로 친절히 안내해 준다. 우리 얘기를 들은 사무실의 역무원은 코모행 열차는 오늘 운행하지 않으니 예약된 표는 차후 환불 받을 수 있게 조치해주겠다며 초조한 우리를 미소로 달래고 유레일 패스 개시도 도와준다. 다행이다. 한 고비를 넘긴 느낌이다. 그동안 여행에서 이런 돌발 상황를 만나지 않고 순조로왔던 것이 고마움으로 묻어난다.

  내일을 기약하며 지하철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조금 전에 나왔던 지하철 입구가 닫혀있다. 모든 대중교통이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방법을 찾기 위해 나이 지긋한 경찰에게 물으니 지금은 걷는 수밖에 없다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상세히 설명해준다. 아침의 기대가 꺾이고 지독히 꼬인 날이 됐다. 터벅터벅 시내를 걷는다. 예정에 없던 시내 구경이다. 그리고 문득 창구 앞에 있던 우리나라 청년에 생각이 미쳤다. 그때 거기서 만난 유일한 한국 사람이다. 하나님은 왜 거기 그 청년을 세워 두어 우리에게 상황을 쉽게 알게 해주셨을까. 난감하던 우리에게 친절한 역무원을 만나게 하여 이 난감함을 해결하고 손해를 입지 않게 하심이 문득 보이지 않는 손길처럼 느껴진다. 세상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보이진 않아도 그 분의 부드럽고 따사로운 손길이다. 이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브레라 미술관을 향해 걷는 아내와 내 발걸음이 가볍다.

(그 날 역무원이 처리해 준 티켓은 예약대행사를 통해 환불 절차를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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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o(코모): 이탈리아 북부 코모 호수 남쪽 끝에 위치한 마을로, 밀라노 중앙역에서 열차로 약 40여 분, 북역에서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Lago di Como(코모 호수)는 길이 46km, 최대 폭 4.3km, 최고 수심 420m에 이르는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바위산과 푸른 호수를 끼고 있는 수려한 풍경 때문에 로마 시대부터 휴양지로 각광 받았고, 영국 시인 쉘리는 '모든 아름다움을 초월한 곳'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사람들이 붐비는 주말을 피해 한가로이 주변을 트레킹하거나 요트를 타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 아늑한 마음의 풍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011년 10월호 맑은샘 투고, 게재)




[ 코모호수 간단 보기 ]

위 화살표 방향으로 남쪽 Como(코모 마을) 선착장을 떠나 Cernobbio → Moltrasio → Argegno → Sala Comacina → Lenno → Tremezzo → Cadenabbia → Menaggio를 거처 Bellagio에 도착.
벨라지오에서 휴식을 즐기고 코모로 다시 돌아와 밀라노 행.



코모 호수 주변 풍경들





































































새삼 창조의 위대함을 떠올리기도 전에 이미 마음 속엔 그의 능력과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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